QT 나눔
제 목 [] 큰 근심
본문
로마서 9:1-13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 리브가에게 주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라는 말씀은 야곱을 사랑하고 에서는 미워하신 하나님의 택하심에 근거한다. 하나님의 자녀는 육신의 자녀가 아니라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 하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하나님의 뜻은 사람의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하나님의 택하심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중에서도 아브라함, 아브라함의 씨 중에서도 이삭을 약속의 자녀로 택하셨다. 약속의 자녀들만이 약속의 말씀을 받는 이유는 택하심의 주권은 하나님께 있기 때문이다.
바울의 큰 근심과 그의 기도를 묵상 한다. 이방인의 사도인 바울에게는 복음을 거부하는 동족 유대인들이 큰 근심거리가 되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자신의 저주를 구하는 바울의 기도에서 살신성인의 경지를 보면서 나를 돌아본다. 나에게는 작은 근심과 기도가 있다. 바울의 행보와는 비교할수 없지만, 언제나 마음에 묵직한 돌을 가지고 있는 듯한 심정이다.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이방인들에게 나아가지만, 나의 친정 가족들은 복음을 거부하는 현실속에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를 택하였기 때문에, 너도 나의 약속의 자녀라고 말씀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난다. 혈통적 이스라엘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이라는 나의 정체성을 분명히 인식하게 해주신다. 나에게 작은 근심이 생긴 것이 내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라는 증거 이겠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바울에게 큰 근심도, 나에게 작은 근심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 안의 무거운 돌을 기도로 주님의 발 앞에 내려 놓는다. 나의 작은 근심에 하나님은 큰 근심으로 일하실 것이 믿어진다.
사라가 이삭을 나은 나이는 90세 였다. 리브가의 둘째 아들이 큰 아들을 섬기게 된다는 것은 그 당시에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택하시고 부르시는 주권은 오직 하나님께 있다는 것을 확인하게 해주는 두 사건이 되었다. 하나님의 택하심은 언제나 그렇듯이 기이하다. 세상의 관점으로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사라와 리브가 처럼 나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은 무엇일까. 주 예수를 믿으면 너의 가정이 구원을 받게 될거라는 나에게 주신 말씀 역시 기이하게 느껴지지만, 나의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하나님의 주권만 인정하며 나아가기로 결심한다. 주의 은혜가 나의 작은 근심에 임하기를 기도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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