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T 나눔
제 목 [] 기쁨 공동체
본문
역대상 29:1-9
오늘 본문의 내용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다윗 왕이 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아들 솔로몬의 성전 건축을 도와달라고 부탁합니다. 솔로몬이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지만 아직 어리고, 하나님을 위한 성전을 짓는 일은 너무 큰 일이므로, 모두 한마음으로 도와주어야 한다고 당부합니다. 다윗은 성전을 짓기 위한 금,은, 보석을 준비하고,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여 개인 소유의 금과 은도 드립니다. 다윗의 솔선수범을 따라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와 가문의 지도자들이 즐겁게 예물을 드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자원하여 드리며 기뻐하였고, 그들이 자원하여 드리는 모습을 보고 다윗 왕도 크게 기뻐했습니다.
저에게 처음으로 다가온 말씀은, 다윗왕이 온 회중에게 이르되 내 아들 솔로몬이 유일하게 하나님께서 택하신 바 되었으나 아직 어리고 미숙하며 이 공사는 크도다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1절 말씀입니다. 다윗의 입장이 되어 생각해 봅니다. 다윗은 왕인데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 솔로몬에 대해 ‘아직 어리고 미숙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운 일이었을까? 오히려 아들을 보호하려고 그럴듯하게 포장하여 부하들에게 그를 섬기도록 강요하거나 또는 요구하는 것이 당연할 듯합니다. 그러나, 아들의 연약함을 드러내고 겸손하게 도움을 청하는 다윗의 리더십이 놀랍기만 합니다. 자신의 통치가 아닌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다윗의 마음이 느껴집니다.
다윗의 공동체를 관찰하며, ‘기쁨 공동체’라는 제목으로 묵상의 글을 적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나의 마음에는 기쁨이 없다는 것을 발견합니다. 아니, 기쁨은커녕, 죽을 것처럼 마음이 힘들었다가 간신히 마음을 진정시키고 앉아 있습니다. 나의 기쁨은 어디에서 빼앗긴 것일까.. 하루를 뒤집어 생각해 봅니다. 친정부모님과 한 달 살이는 해마다 반복되는 어려움을 겪어 오고 있습니다. 반복되는 악순환으로 느껴지기 때문에 더 괴로운 것 같습니다. 그럴수록 말씀과 기도를 붙잡지만, 현실 속의 어려움들은 자꾸만 말씀과의 거리를 멀어지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 견고한 진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는 할 건가? 하는 의심마저 마음에 싹트려 해서 괴롭습니다. 나의 시간과 공간을 멈추고 달려온 이 시간들이 무의미해질까 봐 마음이 조급해지다가도 낙담이 되는 것 같습니다.
다윗의 마음에 두 가지 걱정이 보입니다. 성전 건축이 너무 큰 일이라는 것과 성전 건축을 주도할 자신의 아들인 솔로몬이 너무 어리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하고 싶었는데, 하나님께서 거절하셨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을 묵상하다 보면 다윗은 이 모든 마음의 걱정들을 자신이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 것을 봅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백성들 앞에서 도움을 구하며, 솔선수범하여 자신의 재물을 먼저 내어 놓습니다. 다윗을 보며 진정한 리더쉽은 리더가 혼자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게 겸손하게 고민을 나누고 도움을 청하여, 함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선택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이렇게 어려움을 나누고, 해결책도 나누며, 자원하는 심령으로 함께 재물을 드릴 때, 그 공동체는 기쁨 공동체가 된다는 것을 배웁니다.
다윗을 보며 내 마음에는 어떤 걱정이 있는지 살펴봅니다. 친정부모님과 일년에 한달동안 함께 살겠다고, 세끼 밥을 같이 먹겠다는 소박한 꿈을 꾸며, 해마다 친정살이를 오는데, 그 꿈은 소박하지만은 않고, 오히려 괴로운 도전들을 나에게 안겨주는 것을 매번 느낍니다. 하루가 전쟁터 같으니 마음에 평안을 찾기가 힘듭니다. 노쇠, 무기력, 연약함, 병약함, 우울함, 기억의 왜곡까지, 눈 떠서 잘 때까지 도전의 연속이고 타협점을 찾기는 참으로 어렵습니다. 부모님의 고집이 각각 어찌 세신지 (아마 고집은 나이와 비례하나 봅니다), 두 분이 서로 고집을 부리시면, 당해낼 수가 없어 쉽게 포기하게 됩니다. 때로는 커피숍으로 피신을 나와 심호흡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무기력한 나의 모습을 다윗에 비추어 개선점을 찾아보고 싶습니다. 첫 번째로, 부모님의 구원이라는 성전 건축을 주도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고 선포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다윗처럼 하나님을 인정하고, 성전 건축을 위한 재물을 자원하는 심령으로 내어 놓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두 번째는, 부모님의 구원은 큰일이며 나는 너무도 미약하니, 주위의 분들에게 기도 요청을 드려야겠습니다. 벌써 5년째라서 이번에 올 때는 기도 부탁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는 것이 떠오릅니다. 어느새 간절함보다 익숙함이 앞선 것이었을까… 해마다 더 희망이 보여야 하는데 오히려 올해는 더 낙담이 되는 이유가 기도 부족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올해 친정에 도착했을 때, 작년에 떼었던 달마상이 다시 붙어 있고, 작년에 치웠던 불상이 다시 놓여 있는 것에 낙담이 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큰 비용과 시간을 들여 친정에 오는데 헛일을 한것 같은 마음을 준것은 사단의 속삭임 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떤 마음이실까 생각해 보았더니, 하나님은 “그래 수고한다 계속해라” 라고 격려해 주실 것 같기 때문입니다. 아들이 어린 것을 걱정하는 마음을 하나님과 백성들 앞에서 오픈했던 다윗처럼, 내 주위의 형제자매들에게 나의 마음을 오픈하고 기도를 요청해야겠습니다. 나도 다윗처럼 성전 건축을 위해 솔선수범해서 내놓아야 할 사유재산은 무엇일까 생각해 봅니다. 부모님께 용돈도 풍성하게 드리고, 맛있는 음식도 가능한 한 많이 사드리고, 필요한 것도 채워 드리는데 재정을 아끼지 않아야겠습니다. 그 무엇보다도, 이 성전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여호와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겠습니다.
저에게 두 번째로 다가온 말씀은 9절입니다. 백성들은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기뻐하였으니 곧 그들이 성심으로 여호와께 자원하여 드렸으므로 다윗 왕도 심히 기뻐하니라. 백성들이 자원하여 드릴 때 그들의 마음이 기뻤다고 합니다. 또한 자원하여, 온 마음으로 드림으로 기뻐하는 백성들을 바라보는 다윗 왕의 마음도 크게 기뻤다고 합니다. 이 말씀을 읽으며, 자원하여 드리면 기쁘다는 것과, 자원하여 드리는 것을 보는 것도 기쁘다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드리는 것 이상으로 드리는 태도가 중요하다는 것을 배웁니다.
일 년에 한 달간의 친정살이가 자원하는 심령이었는지, 지금 성심으로 행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하십니다. 내 마음에 기쁨이 없는 것을 보니, 두 가지 지표에서 낙제점을 맞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 마음을 살펴보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마음속에서 ‘어쩔 수 없이’라는 단어를 찾아냅니다. 부모님은 연로해져 가시고, 하나님을 믿으려 하지 않으시고, 내가 직무유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웃에게 복음을 전한다고 가족에게 복음을 전하지 못하고 있는것은 아닌지, 미국에 떨어져 사는 거리속에서 고뇌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하십니다. 자원하는 심령과 성심을 다하는 마음이 아닌, 의무와 책임으로 ‘어쩔 수 없이’ 친정에 오곤 하는 소극적인 나의 모습을 보게 하시니, “저 이래도 괜찮은가요?” 하나님께 질문드립니다.
다윗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으려는 마음을 내려놓게 된 것은, 다윗으로 시작되는 다윗의 왕조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듣고 나서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짓는 심정으로 친정에 오는 것은 아닌지 돌아봅니다. 하나님께 묻지 않은 나의 생각,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나의 선행을 행하기 위해, 하나님께 빚갚는 심정으로 친정에 오는 것은 아닌지.. 친정이란 익숙한 공간에서 하나님 생각보다 내 방법이 앞선 것은 아닌지, 친정 부모님에 대해서는, “하나님보다 제가 더 잘 알아요”.. 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는데, 정말 어느것 하나도 걸리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내가 어리석고 또 어리석은 인간이라는 것을 처절하게 느낍니다. “하나님, 저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하나님의 궤를 오벧에돔의 집에 두고, 자신은 더 이상 궤를 옮길 수 없다고 고백하는 다윗의 심정이 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주신 말씀으로 돌아갑니다. 힘을 다하여(2), 사모하므로(3), 즐거이 손에 채워(5), 즐거이(6), 자원하여, 성심으로(9). 기쁨의 근원은 ‘자원하는 심령’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하나님, 저의 무기력한 ‘어쩔 수 없이’의 심령이 어떻게 하면 ‘자원하는’ 심령이 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제 삶을 움직이는 동력이 기쁨이 될 수 있을까요? 잠시, 순간 맞보는 기쁨을 넘어, 어떻게 하면 그 기쁨을 항상 누릴 수 있을까요? 하나님께 질문을 드립니다.
내 마음과 물질을 드리는 대상이 사람이 아닌 하나님이 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사람에게 물질과 시간을 사용하면 된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습니다. 적용해 보면, 하나님을 위해 친정살이를 하고, 하나님 나라를 위해 친정부모님께 시간과 물질을 사용하면 된다는 말씀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친정부모님의 반응에 나의 마음의 기쁨을 빼앗기지 않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했으니 하나님께서 기뻐하시고 잘했다고 하신다면 나의 마음은 여전히 기쁠 것입니다. 하나님을 목적 삼으면, 부모님이 감정적이셔도 함께 감정적이 되지 않고, 말도 안되는 고집을 부리셔도 바로 잡으려 하지 않고, 투정을 부리셔도 받아주는 넓은 마음을 가질수 있을것 같습니다.
이번 친정살이가 전적으로 자원하는 한달이 되려면, 자원하겠다고 이를 악물고 결심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나를 위해 언제나 자원하시는 하나님의 심령이 나의 것이 되면 된다고 격려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납니다. 다윗에게 다윗의 왕조를 펼쳐 보이시며, 성전 건축 대신 하나님의 나라로 초대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은 나에게도 부모님의 구원을 넘어 하나님 나라로 초대해 주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며 부모님을 섬기는 한 달이 되도록 기도합니다. 매년 반복되는 악순환을 선순환으로 바꾸어 주실 하나님을 기대하며 오늘 하루를 기쁨으로 시작하겠다고 선포합니다.
오늘 주신 말씀을 마음에 담고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역대상의 다윗의 하나님이, 올해 친정살이 동안에 나의 하나님으로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므로 성전 건축을 성심껏 준비하는 다윗처럼,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부모님의 구원이 이루어 지도록 준비하는 제가 될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CONTACT